[이달의 선정 도서]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지은이: 크리스 밀러
- 옮긴이: 노정태
- 펴낸곳: 부키
- 발행일: 2023년 5월 19일
- 가격: 28,000원
- 면수: 656쪽
- ISBN: 978-89-6051-983-1
전장의 경쟁력을 바꾼 반도체
아무리 뛰어난 신기술이라도 등장과 동시에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기술이 실용적인 제품으로 구현되고 필요한 곳에 적시 공급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칩 워>는 초기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 성장 이면에 ‘군사적 수요’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방대한 계산을 수행하면서도 무기체계의 크기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했던 국방 분야의 요구가 집적회로의 상용화와 대량 생산을 견인한 것이다.
“트랜지스터의 이론화에 대한 그의 기여는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를 유용한 제품인 칩으로 만들고 그것을 미군에 판매하면서 대량 생산의 길을 연 것은 그가 차린 회사를 떠난 여덟 명의 반란자, 혹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모인 그 비슷한 부류들이었다.”
《칩 워》, 85~86쪽
이후 반도체는 민간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고도화된 전자기술은 다시 무기체계의 탐지·통신·정밀타격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현대전의 경쟁력은 이제 장비의 크기나 수량을 넘어,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 활용하는가’의 싸움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서 기술의 우수성이 실제 무기체계의 성능으로 온전히 발휘되려면, 이를 구성하는 부품의 품질과 신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신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산되는 제품이 계약 및 규격에서 정한 요구조건을 충족하는지 살피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국방기술품질원의 품질관리 및 품질보증 업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신기술과 국방 전력을 잇는 튼튼한 교량 역할을 수행한다.
국경을 넘는 공급망, 오래 쓰는 무기체계
반도체는 단일 기업이나 국가가 모든 공정을 독점하기 불가능한 산업이다. 설계와 제조, 소재와 장비 등 고도의 전문성이 국경을 촘촘히 가로지르며 연결된다. 완성된 칩 하나에는 전 세계 수많은 공급자의 기술력과 생산 인프라가 깃들어 있고, 국제 분업 구조는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장비에서도 드러난다. 네덜란드 기업 ASML은 빛을 이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 패턴을 새기는 노광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특히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첨단 반도체의 미세한 회로를 구현하는 데 쓰이며, 이 장비 역시 여러 국가와 기업의 기술이 결합되어 완성된다.
“하지만 ASML의 극자외선 장비는 비록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조립되고 있다 한들 실제로는 네덜란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부품은 캘리포니아의 사이머와 독일의 자이스, 트럼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칩 워》, 391쪽
이러한 국제적 분업은 산업 발전을 이끄는 거대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특정 지역이나 기업의 리스크가 전 세계 공급망으로 번지는 취약점이 되기도 한다. 특정 부품의 생산이 중단되거나 공급 경로가 막히면, 이를 탑재한 장비 역시 직격탄을 맞게 된다.
국방 분야에서 이 문제는 무기체계의 장기 운용 특성과 맞물려 더욱 심화된다. 무기체계 자체는 수십 년간 현역으로 운용되더라도, 그 안에 탑재된 상용 반도체 부품은 시장과 기술의 빠른 변화로 인해 훨씬 먼저 단종될 수 있다. 따라서 부품을 최초로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미래에도 이 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기품원은 부품 단종이 군수품 획득 및 군수 지원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인 단종 부품 조사·분석, 관련 제도 연구, 정보체계 운영, 그리고 부품 단종 관리 계획서 작성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세계로 뻗어 있는 공급망의 맥락을 짚어내는 일이 곧 우리 군의 장비 가동률을 굳건히 지켜내는 핵심 과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겉모습 너머, 부품의 신뢰성을 확인하다
“칩을 훔쳐 왔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케이크를 훔쳐 온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도체라는 케이크를 굽는 레시피는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해져 있었다.”
《칩 워》, 112쪽
《칩 워》에서 소련 반도체 산업의 한계를 꼬집은 이 대목은, ‘완성품을 손에 넣는 것’과 ‘그것을 만들어 내는 역량’ 사이의 아득한 간극을 보여준다. 반도체의 성능은 단순히 도면상의 설계뿐만 아니라 최고급 소재, 초정밀 제조 공정, 그리고 현장에 축적된 미세한 노하우가 결합된 결정체다. 겉모습만 똑같이 모방한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기술적 신뢰성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이 장면을 국방 부품의 관점으로 가져오면, ‘부품의 외형과 라벨만으로 성능과 신뢰성을 섣불리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필요한 부품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로를 통해 유입되었는지, 국방 규격에 맞는 정품인지 철저히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특히 위조 부품의 유입은 부품 단일의 고장을 넘어 무기체계 전체의 성능 저하와 아군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리스크다. 기품원은 군수품 품질보증 과정에서 위조 부품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조사·분석과 제도 연구, 정보체계 운영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 부품을 확보하는 일과 그 근원에 대한 신뢰를 검증하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다.
부품의 확보에서 신뢰의 확인까지
오늘날 반도체 공급망은 단순한 경제적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기술을 보유하는 능력 못지않게, 그 기술에 접근해 필요한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칩 워》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 통제를 설명하며 이를 단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압축한다.
“결국 미국은 공급망을 끊음으로써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칩 워》, 519쪽
이 냉혹한 국제 정치를 국방 현장으로 옮겨오면,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더욱 구체적이고 날카로워진다. ‘우리 군에 필요한 부품을 끊김 없이 공급받을 수 있는가?’, ‘기존 부품이 단종되었을 때 즉각적인 대체재가 있는가?’, ‘새로 확보한 부품은 전장의 가혹한 요구 조건을 100% 충족하는가?’. 공급의 지속성과 품질을 함께 확보해야 무기체계의 안정적인 운용을 장담할 수 있다.
기품원의 부품 단종 대응 및 위조 부품 유입 방지 활동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과정이다. 부품의 생산 중단 리스크를 모니터링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위조 부품의 위험을 차단하며, 군사력 운용을 뒷받침할 굳건한 기술적 방벽을 쌓아 올린다.
《칩 워》가 나노미터 단위의 작은 반도체를 통해 세계의 산업과 안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면, 기품원은 그 이면에서 우리 국방의 신뢰를 지켜낸다. 국방 품질의 끝에는 장비를 믿고 전장에 나서는 장병의 생명이 있다. 필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다하는 무기체계, 그 거대한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부품 하나를 집요하게 살피는 기품원의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Epilogue Interview] 작은 부품의 위험을 먼저 살피는 사람들
반도체 공급망의 격변은 국방 현장에서 ‘부품 확보’와 ‘품질 검증’이라는 실질적인 과제로 직결된다. 부품 단종 및 위조 부품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공급망관리연구실 김상훈 연구원을 만나, 작은 부품 하나가 무기체계 운용에 미치는 파급력과 품질관리의 진정한 의미를 물었다.
Q. 무기체계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 하나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A. “장비 자체는 수명이 남아 계속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에 필요한 부품 하나를 구하지 못해 전체 가동이 멈추는 아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작은 부품의 부재가 정비 지연으로 이어지고, 결국 무기체계 운용의 치명적인 공백을 초래하는 것이죠. 대체 부품을 찾더라도 그것이 기존 장비의 가혹한 환경에서 100% 정상 작동하는지 재차 검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릅니다.
기품원은 이러한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품의 단종 여부와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조사·분석하고 있습니다. 방산 업체가 미리 대응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도 병행합니다. 문제가 터진 뒤 허둥지둥 부품을 찾기보다, 미래에도 필요한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선제적으로 살피는 것이 국방 품질관리의 핵심입니다.”
Q. 군에서 사용하는 장비에 치명적인 위조 부품이 유입되지 않도록, 기품원은 어떤 관리를 하고 있나요?
A. “부품은 겉모습이나 라벨이 똑같다고 해서 그 안의 성능과 품질까지 동일하다고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제조되었고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쳐 우리 군에 들어왔는지, 이를 투명하게 증명하는 백업 자료를 철저히 교차 검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기품원은 위조 부품 관련 최신 정보를 조사·분석하고 있으며, 전용 정보체계 운영과 제도 연구를 통해 위조 부품 유입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필요한 부품을 ‘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장병들이 전장에서 ‘안심하고 믿고 쓸 수 있는 부품인지’ 그 근원을 확인하는 것이 이 업무의 진정한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