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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따뜻한 그림자의 무게

2025년 국방기술품질원 청렴콘텐츠 공모전 수필 우수상
2025. 11. 07.
문서번호 : DTAQ-2-2025-0040

AI가 요약하는 핵심 키워드

#조직문화개선 #업무분담효율 #직원배려 #청렴실천 #직장내소통

입사 첫날, 그는 낯선 발자국을 조심스레 남기면서, 눈동자에는 조용하지만 새벽빛 같은 각오와 한 줌의 꿈이 비쳐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세상 속에서도 그 눈으로 오히려 세상을 품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손에는 직원용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좋은 사람이 되어 보탬이 되겠다'는 의욕으로 가득해 보였다. 구두를 신은 모습에서조차 단정한 마음이 느껴졌고, 복도에서 마주친 내게도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햇살 좋은 날이었다. 복도 창을 지나가던 빛이 그의 어깨에 가만히 내려앉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작은 것에도 감탄하곤 했다.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것조차 신기한 듯 바라봤고, 사무실 커피머신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름을 불러주면 기분 좋아하며 활짝 웃었고, 자리에 앉아 사원증을 다시 매만지던 손끝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하지만 긴장한 어깨너머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기대와 두려움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그의 어깨에 얹힌 작은 짐들을 하나씩 보게 되었다. 회의 준비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움직였고, 정리해야 할 것이 생기면 눈치 빠르게 다가갔다. 음료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면, 선배들의 이름으로 감사의 공을 돌리지만 조사는 늘 그의 몫이었다. 어느 날엔 내가 우연히 프린터 옆을 지나다가 그가 A4용지를 채우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무실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나갔다. 회식이 잡히면 장소를 알아보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간식이 떨어졌는지 살폈다. 발표자료를 정리해서 공용 폴더에 올리는 일, 본인 담당이 아닌 회의내용이나 자료조사를 선배 대신 정리해서 문서로 만들어 보고올리는 일. 모두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로 시작됐지만, 그 칭찬은 다음번에도 그가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런 흐름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부탁은 나도 모르게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점점 더 말수가 줄고, 눈 밑에 피곤이 내려앉는 걸 보게 되었다. 업무자료는 보안상 집으로 가져갈 수 없기에, 세미나를 비롯한 회의 준비와 본인의 업무 사이에서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는 날도 많았다.

어느 날은 선물 포장지를 고르는 데 시간을 쏟고 있는 그를 보았다. 새벽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붙잡고 있다가 겨우 주문을 마쳤다고 했다. 포장지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조용히 지쳐가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억울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선배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챙겨주는 것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저 모두가 그렇게 해왔고, 나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처럼 익숙해질 거라며 웃었다. 나는 그의 씁쓸함을 담고 있던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조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기준과 절차를 중시한다. 정밀하게 오차 없이, 그리고 적합하며 흐트러짐 없이. 하지만 그 정밀함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너무 쉽게 예외가 되는 건 아닌가, 나는 자주 생각했다.
업무의 효율과 신뢰를 말하면서, 일상 속의 작은 불공정에는 눈감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는 묵묵히 하루를 지나보내면서도, 가끔은 말없이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회의자료를 정리하던 손이 멈추는 날도 있었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칭찬과 함께 건네는 선배들의 격려에 고개를 숙이며 어색하게 웃을 때도 있었다.
내가 “괜찮아?” 라고 물으면, 늘 “네, 괜찮아요.”라며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어딘가 주춤거리는 결이 있었다.

언젠가 다과 세팅과 회의자료를 준비하던 날, 그는 문득 나직이 말했다.
“이런 일들은.. 제가 잘해서 더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그말은 투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의 무게와 의미를 혼자 끌어안으며, 어디에도 적을 수 없는 수고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가 해내는 수많은 일들은 업무성과도, 실적도 아니었고, 보고서의 이름에도 남지 않았다.
회의준비, 음료조사, 사무실정리, 간식채우기, 행사준비.. 누군가의 감사 한 마디가 있으면 다행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 되는 잡무였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배움의 시간’이라 여기며 참고 견디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자리를 지키는 법은 가르쳐줄지 몰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회의 준비 중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는 다른 분이 준비하시는 건 어떨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놀랐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정적을 깨며 말했다. "그래, 번갈아 하는 것도 좋지."

그 말은 조용했지만, 그의 어깨에서 무언가 하나가 내려놓아지는 걸 나는 느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정시에 퇴근했다. 내가 보는 창밖으로 퇴근하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다정한 말로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곤한다. 칭찬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대, 누구도 악의는 없지만, 그 말들이 쌓이면 하루가 기운다.

조직은 여전히 평화롭고, 사람들은 여전히 다정하다. 하지만 따뜻한 조직은 누군가에게만 짐을 지우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더 잘 안다.

청렴은 거창한 구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무게를 알아보는 일이다.
누가 조용히 오래 앉아 있었는지, 누가 늘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나가는지를 기억하는 마음이다.
누군가의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게 살피는 눈빛, 반복되는 부담을 조금 나누는 말 한마디.
그런 조용한 실천 속에 청렴은 스며든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웃게 하고 싶다. 다만, 그 웃음이 누군가의 새벽과 맞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작은 말 한마디가 짐이 되어 고요한 무게를 홀로 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림자를 대신 져주는 손이 많아질수록, 이곳은 더 밝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감항인증연구센터 배유진
국방기술품질원 (52851) 경남 진주시 동진로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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